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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삶의 일상

24절기 중 마지막 대한에 고라니를 만나다

by 글과삶 2021.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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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4절기 중 마지막 대한(大寒)이다. 뜻은 큰 추위지만 춥지 않은 하루였다. 검색을 해보니 '소한의 얼음 대한에 녹는다.'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대한이 소한보다 덜 추운 것이다. 물론 요즘의 날씨가 절기와 다소 차이가 생기고 있어 대한이라고 꼭 많이 추운 것은 아닌가 보다. 그러고 보니 1월 5일 소한이 있던 주가 많이 춥긴 했다.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얼죽산(얼어 죽어도 산책)을 실천하기 위해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만 안 불면 따뜻한 날씨였다. 평소엔 사람들이 안 보였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많이 있었다. 고양이들도 따뜻한 햇살에 풀 밭에서 명상 중이었다. 회사에 살던 고양이 하나가 가출을 해서 어디 갔나 했더니 넓은 세상이 궁금했나 보다. 그런데 멀리도 갔다. 회사 바로 앞 길 건너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걷다 보니 뒤에 느낌이 이상해서 돌아보니 어떤 회사 안에서 뭔가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개나 고양이겠거니 생각하며 가려는데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고라니였다. 주위가 산이라 길을 잃고 여기까지 내려왔나 보다. 도로를 향해 고라니가 달렸는데 다행히 차가 없었다. 종종 고라니를 본적은 있지만 이렇게 만나는 게 신기해서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했다. 

 

당황한 고라니

 

회사에서 고라니를 본게 처음이 아니다. 하루는 사무실 복도에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나길래 가보니 현장에서 일하는 분이 고라니를 들고 있었다. 고라니를 본 것도 신기했지만 저분이 고라니를 왜 들고 사무실까지 왔는지 황당하기도 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현장에 고라니가 나타나서 잡긴 잡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왔다고 했다. 어린 고라니였는데 야생 동물 단체에 연락하니 금방 회사로 와서는 데려갔다. 고라니가 어려서 자연에 방사하면 천적이나 먹이 부족으로 죽는다고 데려가서 후에 방생한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멧돼지가 도시에 자주 나타난다는 뉴스를 봤다.. 고라니가 아니고 멧돼지였다면 생각하니 아찔했다. 회사와 공장이 있던 내가 산책을 하던 길이 예전에는 고라니나 멧돼지의 터전이었을까. 오늘도 많은 고라니, 멧돼지들은 우리가 사는 곳과 그들이 사는 곳의 경계 어디에선가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뉴스를 보니 멧돼지 한 마리를 잡으면 포상금이 20만 원이라고 한다. 

 

youtu.be/cFKpAod2k_k

출처-JTBC

 

고라니가 간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어찌나 빠른지 보이지도 않았다. 들개인지 어떤 회사에서 키우는 개인지 모르지만 짖는 소리가 나는 걸로 봐서는 멀리 사라졌나 보다. 햇빛이 잘 오는 곳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산으로 가려면 많은 사람들과 차를 피해야 한다. 부디 살던 곳으로 무사히 돌아가길 바랄 뿐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산책하려면 손에 무언가 하나 들고 있어야 하는 생각이 든다. 멧돼지가 나타나면 어쩌지.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괜히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봤다. 여차하면 저 회사 담을 요렇게 저렇게 뛰어올라서 하면 되겠지 하며 파쿠르 고수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 

15일 뒤면 입춘이다. 퇴근할 때 어두웠던 밖이 다소 밝아진 느낌이다. 한국에 코로나-19 환자가 나온 지 1년이 되는 날이기도 한 오늘이다. K-방역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우리나라는 코로나-19와 잘 싸우고 있다. 국민들의 높은 의식 수준, IT 기술과 정부의 노력, 그리고 의료진들의 헌신. 2월 말로 예상되던 백신 접종도 2월 초로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11월 집단 면역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하니 대통령의 말씀대로 길고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인다. 물론 변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상황을 긍정적으로 봐야겠다. 유럽은 봉쇄를 하며 국민들의 이동을 금지시키면서 확진자가 계속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게 하지 않고도 빠른 역학조사와 공격적인 검사로 확진자수를 줄이고 있다. 

고라니도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우리도 보통의 일상을 누리는 날이 곧 오지 않을까. 뉴스에 한 어린이가 마스크 없이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고 싶다는 말을 했다. 내가 어릴 때 누렸던 그저 평범한 하루가 그 아이에게는 이루고 싶은 소망이라니. 짝꿍과 바짝 붙어 앉아 장난치는 교실의 풍경이 생각나는데 지금의 교실은 얼마나 이질감이 느껴질 것인가. 24절기의 마지막 대한인 오늘. 다음에 올 대한에는 추워도, 더 추워도 좋으니 마스크 안 끼고 입김 한 번 제대로 뿜어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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